영화 당갈에 대한 생각

2018. 7. 22. 16:48영화 봤다 ㅋㅋㅎ/드라마, 로맨스, 코미디


특별이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있다면, 이름은 모르는데 당갈 영화 감독이다.

내가 알기로 이 영화 감독은 세 얼간이, 별에서 온 피케티의 감독이거든. 모든 영화가 다 재미있었어

나는 이 감독이 인도 최고의 예술가라 생각해


이 감독의 영화들이 모두 재미있었던 이유는 인도 사회의 문제점을 제대로 포착하여 흥미롭게 표현했다는 것과 대한민국 사람인 나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몰입하여 더 재미있게 본게 아닐까 싶다.





이 아저씨는 레슬링을 하고 싶었지만, 레슬링은 돈을 제대로 벌 수 없어서 포기했따.

그래서 여기에 대한 아쉬움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영화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이 자신이 못다한 꿈을 이루길 갈망한다.




아들을 낳기로 결심했다는데 다음 씬을 기대하게 만든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중요한 장면을 생략해버리고 날이 밝았다.



열심히 했지만, 네 명 모두다 딸.

그렇게 자신의 아들을 레슬링 선수로 키우려는 것을 포기하려 했으나



두 딸이 싸움을 겁나 잘해 레슬링 선수로 키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인도의 사회적 배경은 여성이 레슬링 한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섞여있어, 어머님은 말리려 하지만 아저씨의 생각은 확고하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혹독한 훈련을 하게 된다.




마을에는 여자애들이 레슬링을 한다는 소문이 퍼져 비웃음을 받게 된다.




친구의 결혼식장에 간 레슬링 자매는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오히려 친구는 레슬링 자매를 부러워했다. 자신은 여자로 태어날 떄부터 요리와 집안일을 시키고 어린 나이에 혼인을 시키는 반면에 레슬링 자매의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자매는 인도사회가 부과해놓은 '여성의 삶 이라는 개념에' 이탈하여 노력하고 있는 아버지와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당갈에는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던 영화 '세 얼간이', '별에서 온 얼간이(별에서 온 피케이)'의 주연이었던 아미르 칸이 출연한다. 나는 인도배우를 알지 못하지만, 이 친구만은 유일하게 알고 있다. 이쯤되면 믿고 보는 배우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꼰대 아버지(아미르 칸)은 젊은 시절에 갈망하던 레슬링 금메달을 따질 못했다. 이런 인생의 아쉬움은 자신의 아들을 레슬링 선수로 키워서 금메달을 따게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처음부터 엇나간다. 아들은 원했지만 계속해서 딸만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딸을 레슬링 선수로 키우기 위해 매일 마다 지옥훈련들을 강제적으로 시킨다.


 이쯤 되면 아버지라는 권위를 이용해 딸들에게 자신의 뜻을 강제로 관철시키는 잔인한 아버지로 느껴진다. 마을 사람들 또한 여자 아이가 무슨 레슬링이냐며 비웃기 바쁘지만 꼰대 아버지(아미르 칸)의 뜻은 기울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꼰대 아버지(아미르 칸)는 자신의 아이들을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만약 꼰대 아버지(아미르 칸)가 자신의 딸들을 여자로 바라봤다면 인간이 아닌 여자의 삶을 살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레슬링을 가르치는게 아니라 요리와 집안일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을 시켰을 것이고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어린 나이에 혼인을 시키기 위해 좋은 남자를 찾아다녔을거다. 가만 생각해보면 꼰대 아버지(아미르 칸)는 자신의 딸들에게 처음부터 레슬링을 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또래 남자들을 줘 패고다니는 모습을 보고 거기에서 가능성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레슬링은 신체적인 능력, 그것도 힘을 중심으로 하는 스포츠다. 그렇다보니 이 레슬링은 남성적인 것이라는 사고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이 레슬링에 발을 디딘다는 것 자체가 보수적인 인도문화에서는 매우 힘든 것일 수밖에 없다. 그점을 놓고 보아 꼰대 아버지(아미르 칸)가 아니라 '개방적인' 아버지라고 칭해야 할 듯 싶다 

 

 개방적인 아버지(아미르 칸)은 딸들에게 레슬링을 가르칠 때에 항상 공격적인 기술들을 가르치지만 국가대표 코치는 공격이 아닌 방어를 가르친다. 아버지는 왜 방어가 아닌 공격을 주로 가르쳤을까? 이는 딸들이 삶을 살 때에도 방어보다 공격적으로 살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방어라는 것은 상대의 반응을 보고 재빠르게 반응하여 대처하는 것이다. 이를 삶에 적용시켜보자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 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는 삶이다. 그저 주변의 흐름에 편승하여 있는듯 없는듯이 사는 삶과 가깝다. 자신이 입고 싶은 옷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거슬릴까봐 항상 무난한 것들을 입으면서 안정성을 꾀한다. 하지만 공격은 다르다. 상대의 움직임을 살피기 보다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욕망과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감한 움직이다. 이 공격이란 움직임은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 지, 이 움직임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다. 공격이란 움직임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도전적인 움직임이다.


 개방적인 아버지(아미르 칸)이 딸들에게 레슬링을 가르칠 때에 공격적인 기술들을 가르친 것은 현 상황에 머물지 말고 공격적으로 도전하는 인간이 되라는 깊은 뜻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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