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4. 14:10ㆍ영화 봤다 ㅋㅋㅎ/애니메이션
'슈렉' 하면 못생긴 남자가 자동으로 연상될 정도로 상당히 흥행한 영화다. 그런데 난 이제야 봤다.
슈렉은 어렸을 때 누구나 읽어봤을 법한 왕자님과 공주님 이야기의 동화책을 찢어서 엉덩이를 닦는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이 도입부를 다시 떠올려보면 슈렉이 화장실에서 동화책을 찢어 엉덩이를 닦은 행위는 기존의 아키타입을 똥수간에 버리겠다는 과감한 선언이라 하여도 무방하다. 아키타입은 인간이 무의식 중에 당연시 여기고 있는 문화 요소다. 대표적으로는 권선징악형 스토리가 있고, 왕자와 공주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전체이용가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는 대체로 진부하고 식상하다. 다시 표현하자면 전형적인 아키타입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보지 않아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전체이용가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공주는 위기를 씩씩하게 이겨내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것임을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슈렉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아키타입을 순종적으로 따르다가 중간중간 반항하는 모양새를 갖고 있어서 전체이용가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힘든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낯설고 이질적인 초록색 괴물인 슈렉을 친숙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귀엽거나 주인공이라서 그런게 아니다. 영화 도중에 친숙하고 익숙함을 자아내는 동화 속 친구들인 피노키오와 신데렐라, 백설공주 등등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영화 슈렉은 어린아이들에게 친숙한 동화 속 인물들을 삽입하여 못생긴 슈렉을 참고 바라볼 수 있게 하였고 전형적인 아키타입에서 벗어난 신선한 이야기로 어른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았다. 그야말로 클리셰와 아키타입을 정말 똑똑하게 활용하여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셈이다.
영화 슈렉은 전형적인 아키타입과 클리셰를 갖고 노는 반항아적인 기질을 갖고 있지만 전체이용가 영화 답게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바로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교훈이다. 외모를 보는건 나쁜게 아니다. 그런데 외모의 형태만 보고 상대를 규정하고 단정짓는 것은 나쁜 것이다. 영화 슈렉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슈렉의 외모 형태만 보고 인간에게 피해를 끼칠 괴물로 규정지어 버렸다. 그런데 슈렉의 외모를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에게 피해를 끼칠만한 요소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다.
슈렉의 귀는 마치 토끼처럼 양 옆으로 길게 뻗어있다. 이빨을 크고 동굴동글하며 손톱은 잘 정돈되어 있어서 가지런하다. 슈렉의 귀와 이빨, 손톱은 초식동물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형태다. 당나귀는 슈렉을 처음보고 도망가지 않았다. 슈렉의 외모를 보고 자신에게 위협을 가할 만한 신체를 갖고 있지 않음과 동시에 자신과 유사한 신체를 갖고 있는 초식동물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슈렉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다. 만약 슈렉의 귀가 양쪽으로 뻗어있지 않고 호랑이나 사자처럼 전면을 향하고 있거나 이빨이나 손톱이 작고 날카로웠다면 두려워해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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