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20. 22:40ㆍ영화 봤다 ㅋㅋㅎ/드라마, 로맨스, 코미디
벌린, 걸마니
19금 영화다.
여자가 예쁘다
최고
차 멀미ㄹ해서
토하는 촌놈의 모습이다.
그 촌놈의 집까지 데려다 준 차칸 여자이다.
그렇다 이 여자는 타이타닉의 그녀
(이 사진 괜찮을까??)
이 영화는 섹수를 아주 마니한다.
원래 인간들은 이렇게 섹수를많이 하는 동물이였나?
여자는 섹수를 모르는 남자에게 아주 친절하게 알려준다.
(나도 간접적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에게 책을 읽어준다..
타이타닉의 그녀는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감시원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지는 악인가?
"매 달 수감자들이 들어왔고 그들이 지낼 공간을 마련해줘야 했기 때문에 기존에 있던 사람들을 가스실로 보내야 했습니다. 수용가능한 인원이 부족한데 판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끔찍한 악행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성쓰레기라서? 하지만 그녀는 멀미한 남자에게 베푼 친절을 보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녀의 인격보다는 무지함을 비롯하여 일상의 경험을 사유를 하지 않았던 것이 크지 않았을까?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이는 행위에 가담하는 것을 재귀하여 사유 해보았다면 이게 얼마나 비인간적인 행위인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렇듯 사유하지 않는 삶, 반성하지 않는 삶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악행들보다 더 크고 잔혹한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은 명령이 아니라 개인의 사유, 사색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에 무지를 기반으로한 생각과 행동은 악을 평범화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유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무조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자 의무로 삼아야 한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일기를 그렇게 쓰라고 했던 이유는 사색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였을까?
무지하고 무식할 순 있지만 그 무지에 기반한 선택이 어느 조직 집단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본다면 사색과 공부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갖춰야할 기본적인 소양이라는 것이 더 명확해진다. 사색과 공부는 필수적이지만, 공부 없는 사색는 무지에 기반한 그릇된 생각을 고착화 시킬 위험성이 있으며 사색가 따르지 않는 공부는 그 본질까지 습득할 수 없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했어도 사색하는 사람과 사색하지 않은 사람의 내면의 깊이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이 영화를 보면 모르는 것이 약이 될수도 있지만, 모르는 것이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스실에서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수 많은 유태인들을 사색의 대상으로 삼아봤다면 '가스실에서 죽어야만 하는 유태인' , '불에 타죽어가고 있지만 그들의 문을 열어주어선 안된다.' 라는 여성에게 입력된 기본값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더 나아가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비인륜적이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재판장에게 더 나은 변론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듯 사유는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것들을 인간 사회와 관련지어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것에 대한 꺠달음이 있다. 하지만 사유라는 것도 대상이 있어야 하지만 사유의 불을 지펴줄 수 있는 책과 같은 지적인 자극제가 필요하다. 어른들이 책을 보라고 하는 이유는 기나긴 역사적 시간들 속에서 발견한 지혜와 지식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발견과 도덕적인 삶을 위한 사색을 촉직시켜주고 생각의 폭을 넓혀줌과 동시에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정신적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만 읽고 사색을 하지 않는다던가, 책을 읽지 않고 사색을 하는 것은 내면의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는 것이기에 영화 속 여자 주인공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소년이 읽어준 책을 통해 사색을 했었다면, 책에 대해 한 번이라도 재귀하여 생각해볼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보다는 더 나은 생각을 갖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무지는 무사색을 불러올 수 있으며
무사유는 선택적 무지와 다를 것이 없다.
이 선택적 무지는 악을 평범하게 만든다.
- 무사색을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교육
청소년 범죄가 늘어가고 있는 요즘을 보면(*펙트 체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 늘어났는지 나도 모름; 요즘 청소년 범죄 관련 뉴스가 자주 뜨길래;;;) 어린 시절부터 경쟁에 노출되어 있고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교육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어린 친구들은 *성적순으로 급식을 받고, 성적순으로 대학을 가겠다는데 그게 무슨 문제냐? 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성적순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시 여기고 있는데, 피부색은 태어날 떄 부터 선택할 수 없는 것이고 학업성적 또한 아이가 태어나면서 선택할 수 없는 지능의 차이, 가정환경의 차이로 발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차별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는 또 다른 차별주의의 피해자가 되는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꼴이다.
(*http://chamstory.tistory.com/1783 성적순으로 급식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학업성적은 노오오오력 또는 흙수저 출신의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빼먹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말은 스티브 잡스, 빌게이츠처럼 되려면 대학교 자퇴를 해야 할거야.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실로 대학교 자퇴한 사람들 중에서 스티브 잡스처럼 된 사람들은 얼마 있찌 않으며 흙수저들 중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 또한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매우 특수한 사례를 보편화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무한경쟁을 부르고 있는 교육 시스템은 자신을 남들보다 비교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신체적인 능력, 학업 능력, 부모의 재산, 직업 등등 그리고 이것은 세상살이의 당연한 모습이자 많은 살마들이 그래야 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여기게 되며, 이 인식의 기반은 상대보다 한 발 앞서 가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에 생각할 시간은 없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와 인간과의 사색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경험을 그저 좋고 나쁨으로 이분화하여 이해할 뿐 본질을 사색하지 않는 것이다. 타이타닉의 그녀처럼
자신의 폭력으로 인해 피해 받는 것을 친구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사색할 수 있었다면, 교우가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는 것을 재귀하여 생각해보고 사색할 심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청소년 범죄 뉴스의 노출 빈도는 지금보다 덜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세상은 제 발로 정의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순리적으로 권선징악이 행해지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냉혹하다. 정의가 언젠가 바로 서게 될 것이라는 헛된 기다림은 헛된 정신승리만 얻게 될 것이다. 세상은 'F=ma' 같은 물리법칙처럼 도덕법칙이 작동되는 곳도 아니며 악이 스스로 자정되는 도덕적인 세상도 아니다. 이 세상은 정의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도덕이라는 보편적 정의를 바라보며 정의라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 세상이 정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단순한 믿음에 종속되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무사색을 지속한다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공부하고 사색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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